“보고서 써줘”까지는 누구나 합니다
영업기획팀 정대리는 매주 금요일 오전을 주간 실적 보고에 씁니다. 어느 날 AI에게 이렇게 말해 봅니다.
정대리 — 이번 주 실적 데이터야. 주간 보고서 써줘
잘 해줍니다. 표가 만들어지고, 증감률이 계산되고, “전주 대비 매출이 3.2% 감소했습니다” 같은 문장이 붙습니다. 슬라이드 틀에 옮겨 넣으니 30분 만에 보고서가 완성됐습니다. 지난주까지 반나절 걸리던 일입니다.
문제는 보고 자리에서 터집니다.
박팀장 — 3지점 감소는 왜 빠졌어? 이거 프로모션 종료 영향이야, 아니면 재고 문제야?
정대리 — (…보고서엔 그런 말이 없었는데)

그럴듯한데 알맹이가 없는 결과물. 이런 산출물을 워크슬롭(workslop)이라고 부릅니다. AI가 못 해서가 아닙니다. 받은 사람이 자기 업무의 구조를 모른 채 통째로 맡겼기 때문입니다.
위임과 의존은 다릅니다
- 위임 — 내가 방향과 기준을 알고 맡긴 뒤, 결과를 검증하는 것
- 의존 — 모르는 걸 모르는 채로 받아서, 그대로 넘기는 것
정대리의 BEFORE는 의존이었습니다. 어떤 단계를 맡겼는지, 결과를 무엇으로 확인할지 정하지 않았으니 팀장 질문에 답할 수 없는 게 당연합니다.
AI 활용의 총량은 내 업무를 구조로 그리는 능력 × 모델 성능의 곱입니다. 앞자리가 0이면 모델이 아무리 좋아져도 결과는 0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건 더 좋은 프롬프트가 아니라, 내 업무의 지도입니다.

AFTER 1단계 — 워크 리디자인 시트, 5분
지도를 그리는 첫걸음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워크 리디자인 시트라는 웹 폼 하나면 됩니다. 브라우저에서 열어 5~7분간 채우는 한 장짜리 시트인데, 입력 내용은 서버로 전송되지 않고 전부 브라우저 안에서만 처리됩니다.
시트의 질문 순서가 곧 리디자인의 사고 순서입니다.
- 쪼개기 — 업무 하나를 3~6단계로 나눈다 (단계마다 소요시간)
- 없애기 — 그 단계, 진짜 필요한가? 관성으로 하던 단계를 먼저 걸러낸다
- 지키기 — AI가 잘해도 내가 직접 할 단계를 정한다 (전부 맡기는 건 리디자인이 아니라 의존이라, 이 칸이 비면 시트가 반려합니다)
- 맡기기 — 남은 것을 AI에 맡기되, 결과를 무엇으로 확인할지까지 정한다

정대리가 채운 시트의 완성본이 아래에 있습니다. 폼에서 “영업기획 — 주간 실적 보고” 페르소나를 고르면 같은 내용이 자동 입력되니, 예시를 눈으로 먼저 보고 내 업무로 바꿔 써도 됩니다.
정대리의 워크 리디자인 시트 (전문)
# 워크 리디자인 시트 — 주간 실적 보고
> 작성: 영업기획팀 정대리 · 2026-07-27 · skills.itda.work/tools/work-redesign-sheet
## 맥락
- 업무: 주간 실적 보고
- 도구: 엑셀, ERP, 파워포인트, 사내 메일
- 결과를 받는 사람: 팀장 보고, 영업본부 공유
## 업무 흐름
1. ERP에서 주간 실적 데이터 내려받기 — 20분
2. 엑셀로 지점별·품목별 집계 — 1시간
3. 전주 대비 증감 원인 파악(지점 전화 확인) — 1시간
4. 보고서 슬라이드 작성 — 1시간 30분
5. 팀장 보고·수정 반영 — 30분
## 없애거나 줄일 단계
- 없음 — 전 단계 필요
- 이유: 증감 원인 없이 숫자만 가면 보고가 반려됨 — 전 단계 필요
## 내가 직접 지킬 단계
- 3단계(전주 대비 증감 원인 파악(지점 전화 확인))
- 이유: 지점 사정 청취와 원인 해석은 관계와 맥락이 걸린 일 — 팀장 질문에 답하는 것도 나
## 가장 답답한 지점
- 2단계(엑셀로 지점별·품목별 집계)
- 4단계(보고서 슬라이드 작성)
- 이유: 매주 같은 집계·같은 장표를 손으로 다시 만든다
## AI에 맡길 일
- 유형: 분석, 작성
- 결과 확인 방법: 집계 합계를 ERP 원본 수치 3개 표본과 대조, 전주 보고서와 항목 일치 확인
## 다음 행동
- 이 시트를 Claude에 첨부하고 work-redesign 스킬로 업무 지도 만들기
여기서 눈여겨볼 것 두 가지. “없앨 단계 없음”에도 이유가 붙어 있습니다 — 없음도 판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3단계(지점 전화 확인)는 답답한 지점이 아닌데도 직접 지킬 단계로 남겼습니다. 지점장에게 사정을 듣고 해석하는 일은 관계가 걸린 판단이고, 팀장 질문에 답하는 사람도 결국 정대리이기 때문입니다.
AFTER 2단계 — 시트를 업무 지도로
시트만으로도 리디자인 한 바퀴는 끝났습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가면, 시트를 Claude(Cowork·Code)에 첨부하고 이렇게 요청합니다.
정대리 — 첨부한 워크 리디자인 시트를 읽고, work-redesign 스킬로 업무 지도를 만들어줘
work-redesign 스킬은 시트에 이미 적힌 것을 다시 묻지 않습니다. 대신 시트가 못 담는 축만 골라 묻습니다. 실제 인터뷰는 이렇게 흘러갔습니다.
Claude — 시트를 읽었습니다. 업무(주간 실적 보고)·도구·받는 사람은 시트에서 가져왔습니다. 두 가지만 더 여쭙겠습니다. 결과를 받는 “팀장”과 “영업본부”는 실명·규모로 적으면 지도가 구체적이 됩니다. 누구인가요?
정대리 — 박팀장, 그리고 지점장 12명이야.
Claude — 이 영역에서 주간 보고 말고 반복되는 업무가 하나 더 있을까요? 지도는 업무 2개 이상일 때 구조가 드러납니다.
정대리 — 월간 실적 마감 분석도 내 몫이야. 목표 달성률 계산하고 지점 순위 내는 거.
이 두 번의 문답으로 지도가 완성됩니다. 지도의 뼈대는 가치 × AI 개입의 4분면입니다 — 같은 한 사람의 업무가 네 칸으로 갈립니다.

| AI 개입 낮음 | AI 개입 높음 | |
|---|---|---|
| 가치 높음 | 🔒 인간이 지킬 것 (Authenticity) 기획·의사결정, 감각·협업 — 지켜야 해요 | 📈 AI로 증강할 것 (Augmentation) 산출을 내가 읽고 판단하는 일 — 검증을 붙여 맡기기 — 진짜 승부처 |
| 가치 낮음 | ⏳ 일부러 유지할 것 (Retention) ⓐ 아직 못 맡기는 일(기술 한계) · ⓑ 맡겨도 안 남는 일(전환 비용) — 재검토 시점 박아두기 | ⚙️ 자동화할 것 (Automation) 검증까지 규칙으로 적히는 일 — 과감하게 넘기기 |
오른쪽 두 칸을 가르는 것은 AI 개입의 크기가 아니라 검증의 주체입니다. 검증까지 규칙·코드로 적을 수 있으면 자동화, 산출물을 내가 매번 읽고 판단해야 하면 증강입니다. 그래서 같은 항목이 칸을 옮겨 가기도 합니다 — 정대리가 시트에 적은 집계 검증은 “ERP 표본 3개를 사람이 대조”였지만, 인터뷰에서 이 대조가 합계·건수 대사 규칙으로 적히는 순간 집계는 증강에서 자동화로 승격했습니다. 왼쪽 아래도 사유가 둘로 갈립니다 — 수단이 아직 없어 못 맡기는 일(ⓐ)과, 맡길 수는 있어도 설명·검증에 드는 품이 절감보다 커서 안 맡기는 일(ⓑ). 되느냐가 아니라 남느냐가 기준입니다.
승부처는 오른쪽 위(증강)지만, 지도의 완성 조건은 왼쪽 두 칸이 비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지킬 것”과 “일부러 안 할 것”이 없으면 그건 매핑이 아니라 의존 선언이고, 스킬의 게이트가 실제로 반려합니다.
산출된 work-map.md의 핵심 부분입니다.
정대리의 업무 지도 (work-map.md 발췌)
## 인간이 지킬 것
- 전주 대비 증감 원인 파악 (지점장 전화 확인) — 이유: 지점장에게 사정을 듣고
해석하는 일은 관계와 맥락이 걸린 판단 — 박팀장 질문에 답하는 것도 나
- 박팀장 보고·수정 반영 — 이유: 보고의 결론과 책임은 위임 불가
## AI로 증강할 것
- 보고서 슬라이드 작성 — 검증: 전주 보고서와 항목·순서 일치 확인 후 수치 재대조
- 특이 지점 원인 분석 메모 작성 — 검증: 메모의 수치 인용을 마감 데이터와 대조하고
해석은 내가 다시 씀
## 일부러 유지할 것
- ERP 주간 데이터 내려받기·월 마감 데이터 취합 — 재검토: ERP 내보내기 API 권한
승인 후 (다음 분기) — 로그인·사내 시스템이라 지금은 사람 몫
- 반기 전략 워크숍 자료 취합 — 재검토: 다음 반기 시작 전 — 반기 1회뿐이라
설명·검증 품이 절감보다 큼
## 자동화할 것
- 엑셀로 지점별·품목별 집계 — 검증(규칙): 집계 합계·건수를 ERP 원본과 대사 —
시트의 "표본 3개 사람 대조"가 규칙으로 적혀 증강에서 승격
- 목표 대비 달성률 계산·지점 순위 산출 — 다음: 계산식이 고정 규칙이라
miniskill-forge로 굳히기
스킬은 이 지도를 구조 게이트로 검사합니다. “지킬 것이 비어 있지 않은가(전부 자동화 = 의존 선언)”, “검증 없는 위임이 없는가”, “일반론으로 채워지지 않았는가”를 기계로 반려하는 장치입니다. 정대리의 지도는 이렇게 통과했습니다.
work-redesign 구조 게이트 — PASS ✅ (5/5 hard)
✅ C1 필수 섹션 존재(맥락·태스크·4분면·다음 행동)
✅ C2 좌측 계약 — 인간이 지킬 것 ≥1, 일부러 유지할 것 ≥1
✅ C3 분해 계약 — 태스크 ≥2, 태스크마다 행동 ≥2
✅ C4 고유 맥락 교차 — 맥락 토큰 ≥3, 본문 재등장 ≥2 (일반론 반려)
✅ C5 증강 항목마다 검증 서술 (검증 없는 위임 = 의존)
같은 위임, 다른 결과
다음 주 금요일, 정대리는 지도의 오른쪽 두 칸대로 집계(자동화)와 슬라이드 초안(증강)을 AI에 맡겼습니다. BEFORE와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 BEFORE (통짜 위임) | AFTER (지도 기반 위임) | |
|---|---|---|
| 맡긴 것 | ”보고서 써줘” 전부 | 집계·슬라이드 초안만 (원인 파악·보고는 내가) |
| 검증 | 훑어보기 | 집계는 합계·건수 대사 규칙이 자동으로, 슬라이드 초안은 전주 항목 대조를 내가 |
| 팀장 질문 | 답 못 함 | 원인은 내가 지점장과 확인했으니 즉답 |
| 다음 주 | 처음부터 다시 | 지도가 상시 컨텍스트 — “work-map.md 읽고 시작해줘” |
시간은 BEFORE와 비슷하게 줄었지만, 불안이 사라졌습니다. 무엇을 맡겼고 무엇으로 확인했는지 스스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의존과 위임의 차이입니다.
내 업무로 시작하기
정대리는 예시일 뿐입니다. 워크 리디자인 시트에는 10가지 도메인 페르소나가 들어 있습니다 — 관세청 공지 전파, 금융회사 준법감시, 공공기관 감사 대응, 공제회 회원지원 같은 공공·금융 실무부터 인사·마케팅·회계·개발 PM·강사까지. 내 일과 가까운 페르소나를 골라 자동 입력해 보고, 그 틀에 내 업무를 얹으면 됩니다.
시트에서 멈춰도 좋습니다. 한 장을 채우는 동안 이미 “없앨 것·지킬 것·맡길 것”을 스스로 갈랐으니까요. 더 가고 싶어지면 그 시트가 그대로 스킬의 입력이 됩니다.